2009/02/05 09:32

‘돌아온 일지매’ 내레이션의 발견

[방송따져보기] 조민준 드라마비평가  
 
현재 방영중인 MBC의 수목 미니시리즈 〈돌아온 일지매〉에 대하여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흥미로운 논쟁이 펼쳐지고 있다. 무엇보다 도마에 오른 것은 마치 변사처럼 사건의 전개라든가 인물의 감정에 대해 주석을 달고 있는 여성 성우의 내레이션. 과도하게 개입된 내레이션이 시청자들의 몰입을 방해하고 심지어 시대극임에도 희화화된 현대의 어휘를 사용한다는 등의 내용이 쟁점인 것으로 보인다.

이 드라마의 내레이션 사용은 분명 기호에 따라 호오가 갈릴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고전적인 드라마투르기로 치부되던 내레이션이라는 장치가 〈돌아온 일지매〉에서는 매우 불가결하게, 아울러 창의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거리두기의 장치로서 음성 해설을 개입시켰던 〈창 밖에는 태양이 빛났다〉(1992)를 비롯하여 내레이션 기법을 다양하게 실험해 온 드라마 연출가가 황인뢰 PD였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우리는 이 드라마의 내레이션 활용에 대해서도 세심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돌아온 일지매〉는 고우영 화백의 원작 만화 〈일지매〉를 각색한 작품이다. 그리고 다른 만화와 달리 유독 전지적 시점의 지문이 많은 고우영 원작 특유의 분위기를 재현하기 위해 내레이션을 사용한다는 점은 쉽게 납득이 되는 사실이다. 하지만 문체만 유사할 뿐 재창조된 내용으로 상이한 형태를 띠고 있는 이 내레이션이 정작 드라마에서 힘을 발휘하는 대목은 장면과 장면을 연결하는 편집점으로서 기능할 때다.

오랜 세월에 걸쳐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인물들이 다양한 사건을 일으키는 서사 구조를 품고 있는 터라 원작 〈일지매〉에서 시공간의 비약은 적지 않게 나타난다. 이 비약의 과정에서 선후가 바뀐 인과의 구조는 서스펜스를 낳으며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을 만들어낸다. 원작에서 지문은 그처럼 다채롭게 시공간을 넘나드는 서사를 일관되게 묶어주는 구심점으로도 기능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형태의 오리지널 텍스트에서 지문이라는 장치를 배제한 채 각색하는 방법이란 하나밖에 없다. 이야기의 구조를 가급적 시간 순에 따라 공간적인 동일성을 유지하는 형태로 재편하는 것. 텔레비전 드라마로서는 이처럼 단선적인 각색을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이겠으나 대신 그럴 경우 장면과 장면의 비약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극적 긴장은 포기해야 한다.

〈돌아온 일지매〉의 제작진들은 반대로 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전략을 택했다. 그리하여 〈돌아온 일지매〉에서 사건과 시공간은 원작에 비해서도 훨씬 잘게 쪼개어졌고 선후 인과가 더욱 산발적으로 뒤바뀐 장면들은 매 회마다 ―심지어 회차를 넘나들며― 시청자들에게 미스터리와 극적 긴장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드라마에서는 흔치 않게 복잡하고도 다층적인 서사 구조를 구축할 수 있도록 기능하는 것이 장면과 장면을 이어주는 〈돌아온 일지매〉의 내레이션이며, 고전적인 내레이션의 기능과의 차별점도 여기서 발생한다.

<돌아온 일지매〉의 내레이션 기법은 드라마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주제에 있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랫동안 우리는 색다른 소재를 다룬 새로운 드라마들의 등장을 고대해 왔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의 문제만큼이나 어떤 이야기의 틀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중요하다. 새로운 이야기는 마지막 회와 함께 일단의 생명력을 다하지만 새로운 틀과 구조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담는 그릇으로 남는 까닭이다. 그리고 고전적인 장치를 새롭게 사고하여 창의적으로 활용한 〈돌아온 일지매〉의 내레이션은, 그 틀을 만드는 과정이 반드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일 필요는 없다는 메시지 또한 아울러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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