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4.26 17:31

‘체면’을 위해 ‘염치’를 버리는 제1야당


[김세옥의 헛헛한 미디어]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상임위원 공백 상태가 장기화 할 태세다. 지난 2월 말 사의를 표명한 이병기 상임위원의 후임 추천권이 있는 민주당이 지난 19일 양문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을 보궐 상임위원으로 최종 결정해놓고도, 해당 안건의 국회 본회의 상정 시점을 결정하지 않고 있는 탓이다.

민주당은 후임 방통위원 추천 안건의 상정 시점과 관련해 공식적으로는 아무런 입장도 표명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저 “4월 안엔 어렵다”는 결론만 흘러나오고 있다. 재검토 작업까지 하며 방통위원으로서 양 총장의 자격에 하등의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고, 이달 28~29일 본회의도 예정돼 있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돌이켜보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작금의 상황은 지난 한 달 반 동안 조금씩 예고돼 왔다. 사실 민주당이 양 총장을 후임 방통위원으로 최종 결정한 것은 지난 5일이다. 지난 3월 18일 방통위원 추천 TF(태스크포스) 면접을 진행하고 최고위원회의를 거쳐 양 총장을 후임 방통위원으로 추천키로 결정한 것이다.

 
 
▲ 양문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 ⓒPD저널
그러나 민주당의 결정 직후 청와대와 여당 일각에서 양 총장의 자격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왔다. 양 총장이 방통위 설치법에 명시된 ‘방송·언론 또는 정보통신 관련 단체나 기관의 대표자 또는 임직원의 직에서 15년 이상 있거나 있었던 자’라는 자격 요건을 충족하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민주당은 곧바로(4월 7일) 법률 전문가들로부터 해당 법문 자체가 불분명한 만큼 유사한 법 규정(감사원법 제7조 제1호)을 고려할 때 해당 법문을 ‘단체나 기관의 대표자’ 및 ‘단체나 기관의 임·직원의 직에 15년 이상 있거나 있었던 자’로 분리해석 하는 게 가능하다는 해석을 받았다. 즉, 공공미디어연구소 대표로서 양 총장의 방통위원 선임이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다. 또 대표자 외 다른 임·직원 경력(성균관대 미디어문화콘텐츠연구소, EBS, 한국언론진흥재단, 한국방송광고공사 등)도 15년 3개월로 모호한 법문의 규정 모두를 충족했다.

이처럼 후임 방통위원으로서 양 총장의 자격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지난 12~13일 몇몇 핵심 관계자들의 입을 통해 내정 철회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후 대다수 언론이 내정 철회를 기정사실화 하고 재공모 관련 기사까지 내보내자, TF 관계자들이 “법문 해석에 대한 이견 때문에 재검토를 할 뿐, 내정 철회를 말할 단계가 아니다”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결국 지난 19일 양 총장을 다시 한 번 후임 방통위원으로 최종 결정하자, 언론들은 민주당의 ‘갈팡질팡’을 비판했다.

만일 민주당이 청와대와 여당의 양 총장에 대한 자격 시비에 분명히 맞섰다면 상황은 어땠을까.

앞서 언급했듯 청와대와 여당의 문제제기 이틀도 지나지 않아 법률 전문가들은 상임위원 자격과 관련한 방통위 설치법 법문 자체의 모호함을 지적했다. 또 유사 법 규정을 고려할 때 양 총장의 방통위원 선임은 문제가 없다고 해석했다. 더구나 일련의 해석을 떠나 한 인물이 15년 동안 특정 단체나 기관의 대표자를 15년이나 맡는다는 것 자체도 현실적이지 않다.

결국 청와대와 여당의 반대를 지나치게 의식해 협상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야당에 주어진 추천 권한을 스스로 포기할 뻔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태도를 취했던 것일까.

민주당 안팎에선 특정 인사가 자신이 ‘미는’ 인물이 관철되지 않자 애매모호한 태도를 계속해서 보였고, 이후 일련의 ‘잡음’ 없이도 가능했을 추천 과정을 난항으로 만드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이 인사는 지난 19일 양 총장을 방통위원 후보로 최종 내정하는 과정에서도 자신이 언론에 했던 말이 있는 만큼 ‘체면’을 위해서라도 추천 안건의 본회의 상정 시점을 뒤로 미루자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적으로 동의하진 않지만 백번 이해해 정치는 사람이 하는 것이고, 사람이 하는 일인 만큼 이런 저런 관계에 대한 고려가 있을 수도 있다고 치자.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까지다.

청와대와 여당이 반대할 근원적 이유가 사라진 상황에서, 더구나 방통위 상임위원 공백이 두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종합편성사업자 선정과 벌써 4주째 파업이 진행되고 있는 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후임 이사장 선임 등의 일정이 모두 발목잡혀 있다. 그런데 특정 인물의 ‘체면’ 때문에 후임 방통위원 추천 안건을 상정할 수 없다는 건 이해의 범위를 넘는 일이다.

누군가의 ‘체면’ 때문에 방송·언론 관련 정책과 현안의 해결을 위한 시간이 몇 달이나 뒤로 미뤄져도 괜찮은 걸까. 그게 민주당이 말하는 제1야당으로서 책임지는 정치일까. 또 이 과정에서 자격 논란으로 언론의 도마 위에 올랐던 양 총장의 ‘체면’은 어떻게 되는 걸까. 특정 정치인의 ‘체면’을 위해 민주당이 제1야당으로서의 ‘염치’를 상실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김세옥 기자 kso@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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