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5.11 13:32

개발독재가 선진화는 아니다


[우석훈의 세상읽기]

 
▲ 우석훈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88만원 세대 저자)
원래 나는 성향상 큰 개념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신자유주의라는 표현과 같은 큰 개념은 쓸 때는 시원시원해서 좋기는 한데, 정작 한국이라는 아주 특수한 나라에서 벌어지는 세밀하고도 황당한 일들을 설명하거나 이해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노무현 정부 초기에 ‘신개발주의’라는 용어가 한 때 학계에서 사용되었던 적이 있다. 박정희 시대의 개발주의에 비해서 이제는 환경영향평가와 지역 개발계획에 대한 민간 심의 같은 것들을 강화시켜서 절차는 어느 정도 갖추어놓았지만, 여전히 정책은 개발주의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개념이 그렇게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수도권의 과밀화와 이에 따른 지방경제와 지역 생태계의 수탈구조 같은 것들을 설명할 수 있는 좀 더 세밀한 개념이 필요하다는 것이 당시 나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개발독재라는 개념도 잘 사용하지 않는다.

개발독재라는 단어만큼 속 시원하게 박정희 시대에서 노태우 시대까지 이루어진 것들을 잘 설명해주는 개념도 없다. 그 시기의 모든 것들을 ‘경제 개발’과 ‘국토 개발’이라는 두 가지 단어로 수렴했고, 또 농촌으로부터 사람들을 도시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농촌은 효율적으로 수탈되어야 했다. 전통적인 공동체는 사정없이 무너져 내려갔지만, 학계와 정치권은 이것을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불렀고, 그것이 선진국으로 가는 길로 포장시켜냈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일들을 일사불란하게 지휘하기 위해서 정치적 행태는 독재의 방식을 취하게 되었다.

이 개발독재는 한국에서 해체되었을까? 여러 가지 논란이 있겠지만, 한국에 생태적 고려라는 것이 시작된 것은 90년대 중후반의 환경단체들의 노력 덕분이라기보다는 1991년의 낙동강 페놀 사건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결국 두 차례에 걸친 페놀 방류사건으로 대기업 회장이 물러나게 되고, 환경처장이 경질되게 되었다. 그 후에 한국의 대기업들은 환경경영이라는 패러다임을 대대적으로 도입하기는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업마다 환경담당자라는 것을 두어서 사법적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을 지고 감옥에 갈 사람을 만드는 것이 그 실체가 아니었을까?

 
 
▲ 경남 창원에서 열린 제1회 자전거 축전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어쨌든 지난 10년 동안, 한국에서 국토 생태가 나아지고 있다는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의 미세먼지 오염도는 끊임없이 악화되고 있고, 그린벨트는 계속해서 해제되는 중이고, 절대농지의 면적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었다. 농업은 갈수록 위기에 처하고 있으며, 재개발과 뉴타운, 그리고 고층빌딩은 지역 생태계는 물론 인간의 정주 조건마저도 위협하는 중이다. 이 와중에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이라는 것이 나왔다. 이것은 또 무엇일까?

이 실체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렇게 고민할 필요는 없다. 개발독재가 다시 이 땅에 돌아온 것, 그리고 경찰과 용역깡패, 보상금과 지방 토호들의 세계가 다시 돌아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탈탄 에너지 체계로의 전환은 보통은 총량 설정과 함께 진행되는데, 녹색성장에는 그런 총량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은 갖가지 명목으로 수많은 시멘트 사업을 벌이고, 그 인근에 대한 개발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이 과정이 합리적인 토론과 소통과정 그리고 의견수렴과 함께 진행된다고 하면, 그것은 한국의 또 다른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지지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개발사업은 힘으로 진행된다. 그래서 독재이다. 반대하는 사람도 많고, 피해자도 많다. 그런데 그런 것을 전부 경찰력으로 처리하려고 하면, 용산 사태처럼 누군가 죽고 또 죽고, 그렇게 된다. 그리고 결국은 방송과 미디어를 동원해서 독재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배신자 혹은 부도덕자로 몰아가게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한국의 생태주의자들이 국가 반역자의 위치에 놓이게 되는 셈이다. 이름이 뭐가 되었든, 지금 정부가 하는 국토개발의 기조는 개발독재이다. 전국의 자전거도로마저 이런 개발 독재의 수단이 되었다는 사실이 가슴이 아플 뿐이다.

2009년, 지금부터 개발독재의 정국이 열린다. 지금 대통령이 착각하는 것은 개발독재는 구체계로의 복귀이지, 선진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불도저와 삽질로 선진국이 될 수 있다면, 다른 나라도 모두 그렇게 했을 것이고, 북한은 벌써 선진국이 되어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한국 현대사에서 독재의 뒤안길은 늘 쓸쓸했을 뿐이다. 화무십일홍이라고 했다. 불도저와 경찰로 다시 열리는 개발독재 정국, 그게 오래갈 리가 없지 않은가? 생태 시대로 넘어가는 마지막 길목, 거기에 녹색성장이라는 개발독재의 망령이 적으로 서있을 뿐이다. 화학농의 기치를 든 새마을의 상징색도 녹색이었다. 개발독재와의 싸움이 다시 한 번 시작되는 셈이다.

우석훈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webma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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