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26 11:18

배반의 엔딩, 씁쓸한 현실


[김고은의 예능의 정석]〈지붕 뚫고 하이킥〉의 결말

MBC 인기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이하 〈지킥〉)이 지난 19일 막을 내렸다. 벌써 1주일가량이 지났지만, 후유증은 꽤 길다. 예상 못한 ‘반전’으로 끝난 〈지킥〉은 누리꾼들에게 쉽게 떨칠 수 없는 여운, 혹은 분노, 혹은 한숨을 남기고 떠났다.

지훈(최다니엘)이 세경(신세경)에 대한 사랑을 뒤늦게 깨닫고, 둘이 교통사고로 인한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결말은, 시비를 떠나 상당히 의외이고 어느 정도는 충격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사실 김병욱 PD가 ‘무난한’ 결말을 선호하는 연출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마지막 방송 직전까지 ‘안심’할 순 없었다.

특히 결말에 이르며 순재(이순재)와 자옥(김자옥)의 결혼 생활은 크게 무리 없이 진행되고, 현경(오현경)도 큰 갈등 없이 자옥을 ‘엄마’로 받아들이며, 보석(정보석)은 회사를 물려받고, 인나(유인나)는 스타가 되는 등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안정을 찾을수록 ‘불안’도 커졌다.

 
 
▲ 지난 19일 '지붕 뚫고 하이킥'의 엔딩씬. 지훈과 세경이 함께 공항으로 가는 길에 사고사를 당하는 것을 암시한 결말이 논란이 됐다. ⓒMBC
그렇다면 마지막회에서 예상 가능한 반전은 지훈, 세경, 정음, 준혁 이들 청춘남녀 4인방의 관계에 있었다. 그리고 그 반전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형태로 전개됐다. 정음에게 프러포즈하기 위해 반지를 사들고 대전에 가려던 지훈은 세경을 공항까지 배웅하는 그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세경의 고백을 듣고, 그녀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뒤늦게 깨닫는다.

이 정도만 돼도 상당한 ‘반전’인 셈인데, 김병욱 PD는 한 발 더 나아가 이들의 죽음까지 암시하며 끝을 맺었다. 그 충격을 받아들이고 마음을 수습할 겨를도 없이, 정말이지 갑자기.

김병욱과 세경을 향한 ‘분노’의 실체

즉시 인터넷은 들끓었다. 누리꾼들은 결말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였고, 저마다의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결코 적지 않은 이들이 분노와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쏟아냈다는 것이다. 그 분노의 대상은 〈지킥〉이라는 작품과 연출자인 김병욱 PD를 넘어 신세경과 최다니엘이라는 연기자들에게까지 확대되기도 했다.

궁금했다. 이들은 과연 무엇에 그토록 분노하는 것인가. 세경이 남의 남자를 빼앗아서? 정음만을 사랑하는 줄 알았던 지훈이 뒤늦게 세경을 향한 사랑을 깨닫는다는 설정이 어이없어서? 이제 막 행복해지려는 세경이 죽음을 맞게 된 게 안타까워서? 지훈과 세경의 죽음으로 남은 모든 이들이 불행해졌기 때문에? 그것도 아니면 웃기며 즐겨야 할 시트콤의 비극적 엔딩이 괘씸해서?

이유는 다양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의 결말에 대해 얼마든지 다양한 해석과 토론이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일부 혹은 많은 이들이 〈지킥〉과 김 PD를 향해 쏟아내는 분노에 가까운 비난과 불만은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지킥〉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겠으나, 인신공격에 가까운 비난까지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물론 〈지킥〉에 대해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킥〉은 방송 중반까지만 해도 계급과 갈등 같은 사회적 문제를 시트콤의 영역 안에서 터치하면서도 웃음과 감동을 함께 선사하며 ‘걸작’에 가까운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후반부 들어 청춘남녀의 멜로가 부각되면서 ‘희극’의 비중이 줄고 일부 캐릭터가 힘을 잃거나 지나치게 과장됐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마지막회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시간에 쫓겨 거의 초자연적인 힘을 발휘해 촬영해야 하는 일일시트콤의 제작 여건을 생각하면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그렇다 해도 마지막회는 갑작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김병욱 PD는 마지막 몇 분간 세경의 대사에 그동안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모두 담으려는 조급함을 보였다. 짝사랑을 통한 세경의 성장이나 “신분의 사다리를 올라가면 그 밑에 또 다른 누군가가 있을 것”이란 대사는 작품 전체의 주제를 함축한 것이었지만, 인생을 통달한 듯 한 번에 쏟아내는 세경의 대사에 온전히 몰입하기란 쉽지 않았다.

지훈이 세경에 대한 사랑을 뒤늦게 자각한다는 점 또한 그렇다. 물론, 그동안 지훈-정음, 세경-준혁 커플에 지나치게 몰입하지 않은 시청자라면, 세경을 향한 지훈의 관심과 배려가 사랑과 흡사하다는 것을 눈치 챘을 것이다. 지훈은 세경에게처럼 정음에게 늘 따뜻했고, 시간과 돈과 선물을 아낌없이 주었지만, 두 사람의 연애는 주로 밝고 달콤해서 어딘지 위태로워 보였다.

 
 
▲ 엔딩만을 두고 비난하기에, '지붕 뚫고 하이킥'은 꽤 뀌어난 시트콤이 아니었나. ⓒMBC
만일 지훈이 정음을 온전히 사랑했다면, 뒤늦게 광수에게 정음의 사정을 듣고 주소를 물었던 것처럼 정음이 이별을 통보했을 당시에 그녀의 친구인 인나나 광수에게 그 이유를 확인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훈은 자신이 또 상처받았다는 생각에 정음의 진짜 사정을 확인할 겨를이 없었고, 휴대폰의 사진도 금세 삭제했다.

반면 이민을 가려는 세경에게는 적극적으로 “가지 말라”고 말한다. 또 지훈은 우연이었다고는 하나 정음과는 하지 않았던 ‘추억 데이트’를 세경과 공유했고, 정음 앞에서는 늘 든든한 모습을 보이려 하면서 세경 앞에서는 ‘떡실신’ 하거나 피로에 지친 모습을 곧잘 보여줬다.

그런 ‘과정’을 주의 깊게 지켜봤다면 세경의 고백에 회한을 느끼듯 눈물이 그렁해진 지훈의 모습이 갑작스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잠시 멈췄으면 좋겠다”는 세경의 말에 넋이 나간 듯한 지훈을 보면서 그 또한 잠시 시간을 멈추고 싶어 했을 것이라고, 그것이 결국은 죽음 혹은 영원에 이르는 ‘찰나’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흡족하지 않은 엔딩, 그러나 그 또한 현실이다

하지만 이 또한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여기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고, ‘꿈보다 해몽’이라고 손가락질 할 수도 있다. 또한 결말에 대해 “뒤늦은 사랑의 자각을 극대화 한 것”이라는 김 PD의 설명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그 ‘개연성’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제작진에도 반성할 부분은 있을 것이다.

어쨌든 〈지킥〉은 끝났다. 편집 완성본이 제작진의 손을 떠나는 순간, 그 작품은 제작진이 아닌 시청자의 것이 된다. 결말을 감당하는 것도 온전히 시청자의 몫이다. 감당할 몫의 크기는 아마도 작품에 대한 애정의 크기와 비례할 것이다. 김병욱 PD의 인터뷰가 언론을 통해 보도될수록 비난이 증폭되는 것은 그만큼 작품에 대한 애정이 컸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청자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결말을 선사했다면, 또 그 감당하기 어려움이 개연성이나 설득력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제작진은 이에 수긍하지 않더라도 귀담아 들을 부분이 있다.

〈지킥〉의 126회 전체가 뛰어났다고 보긴 힘들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125회까지 〈지킥〉은 우리가 이전에 가족 시트콤에서 기대할 수 있었던 많은 것을 뛰어넘은 시트콤이었고, 그랬기에 ‘수작’ 혹은 ‘걸작’이라고 불렸다. 결말을 감당하기 힘들 수도 있지만, 마지막 126회 한편으로 나머지 125편의 이야기를 모두 ‘실패’로 돌리는 것은 과한 처사가 아닐까.

모두에게 흡족한 엔딩은 아니겠지만, 살아가면서 누구나 최선의 선택만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현실에선 언제나 예상을 깨고 기대를 배반하는 일들로 가득하다. 지난 6개월 동안 〈지킥〉이 보여준 현실이 바로 그것이다. 

김고은 기자 nowa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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