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7.01 15:07

2010년의 허정무, 1998년의 차범근


[정철운의 무한맵] 성적으로 평가받는 축구는 그만하자

정부는 월드컵 우승이라도 한 것 마냥 선수단 기자회견을 열었다. 방송사는 이를 생중계했다. 연합뉴스는 29일자 기사에서 “허정무 감독은 태극전사들을 하나로 묶는 긍정, 자율, 소통의 리더십으로 첫 원정 16강을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월드컵 개막 전까지 시범경기 성적이 시원찮아 여론의 뭇매를 맞았지만, 역시 성적만 좋으면 ‘장땡’이었다.

허정무 감독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처음으로 3점차 이상 ‘완패’를 당했다. 하지만 16강 진출을 이뤘으니 다 지난 일이 됐다. 98년에는 차범근 감독이 네덜란드에게 0대 5 완패를 당하며 경기 직후 경질됐다. 허정무 감독의 ‘금의환향’을 보고 있으니 지난 나이지리아 전에서 16강 진출에 감격, 말을 잊지 못했던 차범근 해설위원이 떠올랐다.

 
 
▲ 차범근 해설위원. ⓒSBS
98년 차범근 감독이야말로 한국의 첫 16강 진출과 가장 가까운 감독이었다. 선수시절 유럽리그 최고의 외국인선수, 아시아에서 ‘100년에 한 번 나오는’ 스트라이커로 군림했던 그가 감독이 됐으니, 언론의 ‘설레발’은 상상 이상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조별리그 1차전 멕시코 전에서 어이없는 하석주의 ‘퇴장’을 겪고 1대 3 역전패했다.

차범근에 열광했던 언론과 국민들의 ‘배신’은 소름끼칠 정도였다. 차범근을 비참하게 만든 것은 ‘1승’이었다. 차범근 감독이 이끌었던 팀은 1무 2패를 기록했고, 허정무 감독이 이끈 팀은 1승 1무 1패였다. 멕시코전만 이겼으면 차범근 감독도 16강 진출에 성공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조별리그 도중 ‘퇴출’당해 죄인마냥 한국에 돌아올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언론의 무차별적인 ‘공격’에서도 자유로웠을 것이다.

멕시코전 패배가 정말 차범근 감독의 잘못인가. 무엇보다 16강 진출 좌절이 사실상의 ‘반 강제적 국외추방’을 당할 만큼 잘못한 일이었을까. 언론은 한 사람의 인생을 망쳐놓을 뻔 했다. 차범근씨는 결국 국내에 발을 못 붙여 중국리그를 떠돌아야 했고, ‘차범근’ 이후의 한국인 감독들은 대표팀 감독이라는 ‘독이 든 성배’를 마시기 꺼려했다.

결국 한국은 한국 언론을 ‘잘 모르는’ 거스 히딩크 감독을 영입했다. 히딩크는 ‘5대빵’ 감독이라는 비아냥을 들어가며 ‘버텼고’, 2002년 한 ․ 일 월드컵에서 4강 성적을 올렸다. 이 때 언론은 또 한 번 ‘후안무치’를 보여주며 ‘영웅 히딩크’를 치켜세웠다. 그리고 모든 언론이 히딩크에 집중할 때, 차범근은 조용히 해설위원으로 돌아와 있었다.

우리들은 일상에서 과정에 상관없이 결과로만 판단하는 것을 부당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이는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2010년의 허정무 감독과 1998년 차범근 감독 모두 훌륭한 감독이었다. 결과란 ‘종이 한 장’ 차이다. 최근 차범근 해설위원이 MBC <무릎팍 도사>의 출연을 거절했다. “아직 가슴에 쌓여있는 게 너무 많다”는 이유였다. 우리는 그를 이해해야 한다. 1998년 당시 우리는, 가해자였는지 모른다.

정철운 기자 pierce@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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