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5.13 09:47

언제쯤 ‘진짜’ 동이를 만날 수 있을까?


[방송따져보기] 지용진〈무비위크〉기자

MBC 월화드라마 〈동이〉가 지난 4일 방송분에서 숙종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동이(한효주)를 향한 숙종(지진희)의 마음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장희빈(이소연), 그리고 천수(배수빈)와 동이의 재회가 그려지면서 멜로 구도를 예고했다. 본격적인 연적 갈등이 펼쳐지면서 동이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뒤엉킨 관계가 이야기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을 여지가 다분하다. 지금까지는 동이의 굴곡진 여정을 보여주며 미시적으로 그녀의 캐릭터를 부각시켰다면, 앞으로는 다양한 인물들의 역학 관계 안에서 거시적으로 동이를 조명할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 〈동이〉는 숙종의 재해석, 장희빈에 대한 재조명, 무엇보다 ‘동이’라는 인물을 역사에서 불러와 서사의 중심에 세웠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동이’는 천민 출신 무수리에서 우여곡절 끝에 후궁이 된 후, 훗날 숙빈 최씨가 되는 인물. 실제 역사에서는 장희빈에 가려져 존재감이 희미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이병훈 PD는 미약한 존재감의 여인에게서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발견했다. 그리고 역사의 한 단락을 통째로 화면에 옮겨 당시의 공기를 재현했다. 

 
 
▲ MBC 월화드라마〈동이〉

〈허준〉 〈대장금〉 〈이산〉 등 굵직한 사극을 선보였던 이병훈 PD는 특유의 세밀한 관찰력으로 한 인간의 삶을 통해 시대를 들여다본다. 이병훈 PD의 작품들은 장밋빛으로 치장된 단순한 석세스 스토리가 아닌 성공 신화의 질퍽한 과정을 탄탄한 얼개 안에서 짜임새 있게 풀어내면서 천천히 몰입을 유도한다. 이병훈 PD표 ‘가마솥 시청률’이란 용어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어쩐지 〈동이〉의 시청률 온도는 미지근하다. 월화극 1위 자리는 유지하고 있지만, 그래도 개운치 않다. 〈동이〉를 견제할 경쟁 작품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외부 요인도 있지만, 결함은 내부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이병훈 PD의 연출이 바닥을 드러냈다는 시청자들의 쓴소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거장이라도 동어반복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자신이 추구하는 작품 세계에서 벗어나면 실험적인 행보로 간주될 수 있지만, 무리수를 담보로 한 모험이기도 하다. 그래서 안정된 방식을 택하지만, 그래서 의도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전작을 답습하는 경우도 왕왕 발견된다.〈동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동이의 얼굴에서 장금이(〈대장금〉)와 송연이(〈이산〉)의 표정을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숙종의 정체를 알고 화들짝 놀란 동이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부각하는 대목은 그동안 장금이와 송연이가 보여준 표정과 많이 닮았다.

이야기의 구성도 궤도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쉬움이 든다. 억울하게 죽음을 맞은 어머니의 한을 풀기 위해 궁궐 수라간으로 들어간 장금이와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장악원에 들어간 동이의 모습은 그림자처럼 닮았다. 게다가 수라간에서 중종의 총애를 받는 장금이와 마찬가지로 숙종의 신임을 얻는 동이의 경우는 〈동이〉가 〈대장금〉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 지용진〈무비위크〉기자

수시로 교차되는 장면의 변화는 동이의 존재감을 희석시킨다. 카메라는 장악원, 감찰부, 의금부, 포도청 등 한 회 등장하는 많은 장소들을 찍어내느라 정신없이 장면을 바꾸고, 더불어 스토리도 산만하게 전개된다. 이 드라마의 타이틀롤인 동이가 중심에 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기교가 핵심을 압도하는 듯한 인상이다. 내의원에서 수라간을 거쳐 도화서 그리고 장악원에 이른 이병훈 PD의 무대에 선 인물들은 저마다 역경을 극복하며 운명을 개척했다. 〈동이〉가 단순한 인물의 성공 신화에 그칠지, 아니면 역사의 인물에게서 새로운 면면을 발견할지, 관건은 이병훈 PD의 연출력에 달려있다. 이제 동이의 진짜 새로운 얼굴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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