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5.26 14:26

차라리 '1회용 전쟁놀이' 였으면…


[시론] 고재열 시사IN 문화팀장

〈3일의 약속〉(1991년)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1.4 후퇴 당시 3일 후에 돌아오겠다고 약속한 후 30년 만에야 평양을 방문하게 된 주인공의 인생역정을 통해 우리 현대사를 조명한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를 떠올린 것은 최근 전쟁론을 펴고 있는 보수 논객 중 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의 ‘국민이 3일만 참아주면…’이라는 칼럼 때문이었다. 새롭게 등장하는 3일의 약속을 보며 지켜지지 않은 60년 전의 약속이 떠올랐다.

 
 
▲ 중앙일보 5월24일자 34면.
김 논설위원은 북한의 비파곶 잠수함 기지를 폭파하는 제한적 무력응징이 필요하다며 ‘3일 인내론’을 설파했다. 국민이 3일만 참아주면 북한 군사력의 핵심인 장사정포의 70%를 요절낼 수 있다는 사회지도층인사의 말을 전하며 전쟁을 결심해야 전쟁을 피할 수 있다고 했다. 북한 특수부대는 우리의 후방 민간인 부대(설마 예비군은 아니겠지?)가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도 했다. 

천안함 대하드라마의 결말은 ‘전쟁론’이었다. 이 드라마가 맺을 수 있는 최악의 결론에 도달함으로써 스스로 ‘막장드라마’였음을 증명했다고 할 수 있다. 이 막장드라마의 구조를 잠시 살펴보자. 처음 사고 소식을 전하는 발단 부분, 그리고 어설픈 구조 실패를 전하는 전개 부분 그리고 사고 원인을 둘러싸고 각종 억측과 의혹이 난무하는 위기 부분을 거쳐 희생자를 영웅화하는 절정부분에 이르게 되고, 끝내 북한의 소행이라는 결말을 내고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5월24일 MB의 전쟁기념관 담화는 새로운 대하드라마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선포였다. 공식적으로는 대북제제 수준이지만 성질 급한 보수논객들은 보복전을 넘어 북침을 주장하고 있다. 6월2일 지방선거에 잘 활용하라는 한나라당의 대외비 지침서가 발견되기도 했다. 어설픈 ‘전쟁드라마’가 시작된 것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KBS 〈전우〉 MBC 〈로드 넘버 원〉등 ‘진짜’ 한국전쟁 드라마가 방영 대기 중이다.

전쟁을 말하는 자들은 전쟁을 참 쉽게 말한다. 우리가 탁 하고 치면 북이 억 하고 고꾸라질 것처럼. 그래서 심심하면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엄포를 놓는 북한의 버르장머리를 단숨에 길들일 수 있을 것처럼. 심지어 이 전쟁은 효율적이기까지 해서 한반도의 안정과 번영을 가져올 수 있다고까지 말한다. 전쟁이 만병통치약도 아닌데 말이다. 전쟁을 말하는 자들에게 묻고 싶다. 본인이 군대는 다녀왔는지, 자식은 군대에 보냈는지, 자식 국적이 한국인지.

전쟁을 말하기 전에 일단 정산부터 하자. 먼저 국방부 천안함 사고 조사 결과 발표가 사실이라면, 국방부장관 합참의장 해군참모총장 2함대사령관 등 천안함 관련 지휘체계에 있는 책임자들은 군법에 따라 처벌해야 한다.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라고 했다. 경계만 실패했나? 도주하는 북한 잠수정은 팽개치고 새떼를 공격하는 이들의 ‘군기’를 바로 잡아야 전쟁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또 다시 무모한 전쟁으로 패전의 치욕을 씻으라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짚고 넘어가는 김에 좀 더 꼼꼼히 짚어보자. 국방부가 천안함 사고 조사결과를 발표할 때 국민에게 사과는 했나? 적에게 이렇게 허망하게 당해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사과한다고 했나? 북한에게 쥐도새도 모르게 당한 것이 무슨 자랑이라도 되는 것처럼 의기양양한 태도라니, 도대체 어느 나라 군대인가? 북한 잠수정에 그렇게 속절없이 당할 것이면 무서워서 함정엔 어떻게 타고 어떻게 경계하란 것인가?

더 짚어볼까? 북한 잠수정이 그렇게 천하무적이라면, 아군 경계에도 불구하고 우리 해역을 유유자적 유린한다면 대통령을 현장에 방문하게 한 군 수뇌부와 청와대 참모진은 무엇인가? 대통령이 테러라도 당하기를 바랬다는 것인가? 북한 잠수정이 제 집 안마당처럼 드나들며 무시로 어뢰를 쏘아댈 수 있는 그 사지에 대통령을 떨어뜨려 놓은 이유가 무엇인가? 이런 것 좀 따져보고 말하자. 

언론은, 특히 보수언론은 무엇하고 있나? 파란 매직이 바다 속에서 50일 동안 부식되지 않고 선명하게 남을 수 있는지 검증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전쟁론이 가져올 한반도의 위기와 이런 위기 조장이 가져올 경제적 손실에 대해서는 따져봐야 하지 않나? 철부지 아이들도 아니고 전쟁하면 이길 수 있느니 없느니 ‘전쟁놀이’를 즐길 것이 아니라 이 위험한 불놀이를 막아야 하지 않을까? 섣부른 전쟁론은 북한의 선제공격을 유도할 수 있다. 6·25 때도 심심하면 북침론을 일삼아 북의 공격에 빌미를 준 것은 이승만 정부였다.   

 
 
▲ 고재열 시사IN 문화팀장

보수언론은 왜 방관하는가? 이 전쟁놀이가 선거에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보기 때문인가? 그래 차라리 이것이 선거를 위한 ‘1회용 전쟁놀이’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선거가 끝나면 전쟁 얘기도 쏙 들어가고, 남북 경협도 정상궤도로 되돌아가고, 6자회담도 성사되고, 그래서 주가도 회복하고 환율도 안정되었으면 좋겠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나라는 김밥이 아니다. 제발 말아먹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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