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5.14 18:36

MBC노조 파업이 남긴 희망과 과제

[해설]39일간의 파업과 4일간의 토론이 남긴 희망과 과제

MBC 파업 국면이 39일 만에 막을 내렸다. 김재철 사장 퇴진과 공정방송 사수를 위해 지난 5일 파업에 돌입했던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본부장 이근행, 이하 MBC노조)는 13일 파업을 잠정 중단하고 14일 오전 9시부로 업무에 복귀했다. 이로써 지난 40여 일간 파행을 빚었던 방송이 차츰 정상화되기 시작했고, 파업 중단 과정에서 지도부 교체 위기까지 몰렸던 노조도 정상화를 이루게 됐다.

MBC 안팎에선 이번 파업이 MBC의 저력을 확인케 하는 동시에 많은 과제와 고민을 남겼다고 진단하고 있다. 비록 김재철 사장과 황희만 부사장 퇴진,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폭로로 드러난 정권의 MBC 인사 개입 진상 규명 등 표면적인 성과를 얻어내진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김재철 사장에 대한 내부 반발과 공정방송 사수에 대한 강한 의지를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투쟁 열기, 서로 다른 ‘인식차’

이번 파업 과정에서 드러난 조합원들의 투쟁 열기는 내부에서도 고무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김재철 사장을 비판하는 여론에는 직종과 연차, 노조원과 비노조원이 따로 없었다. 특히 조합원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가 두드러졌다. 조합원들은 주말과 휴일까지 반납한 채 한강과 야구장 등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형태의 선전전을 진행했고, 이근행 본부장이 무기한 단식 투쟁에 들어가자 60명이 넘는 사원들이 자발적으로 동조 단식에 나서기도 했다.

또 보도부문을 시작으로 7개 직능단체 소속 1028명의 사원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김재철 사장과 황희만 부사장 퇴진을 촉구했고, 특히 기자회와 보도영상협의회는 ‘큰집 쪼인트’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김우룡 전 이사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직접 고소하기도 했다. 즉 과거의 파업 투쟁이 노조 지도부가 지시하고 이를 조합원들이 따르는 방식이었다면, 이번 MBC 파업은 조합원들의 자발적인 ‘참여형’ 투쟁이었던 것이다.

 
 
▲ 39일간의 파업 투쟁 열기가 뜨거웠던 만큼, 파업 중단 결정을 둘러싼 논쟁도 뜨겁게 전개됐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이처럼 나날이 고조되던 투쟁 열기는 집행부의 ‘파업 중단’ 결정으로 순식간에 급반전되었다. 지난 10일 비상대책위원회가 ‘파업 일시 중단’을 결정하자 조합원들이 ‘명분 없이 파업을 접을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한 것이다. 예상을 뛰어넘는 반발에 조합 집행부도 당혹스러워 하는 기색이었다. 결국 지난 10일 시작된 토론은 나흘간 20시간 넘게 이어지며 MBC노조 역사에서 주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두드러진 것은 노조 지도부와 조합원들의 인식 차이였다. 집행부는 파업 동력이 확대되는 시점을 현장 투쟁으로 전환할 단계라고 판단한 반면, 조합원들은 파업 투쟁 수위를 더욱 높일 때라고 본 것이다.

집행부는 △천안함 정국에 이어 지방선거 국면에 돌입하며 MBC 파업이 대외적으로 이슈가 되지 못하고 △정권과 김재철 사장이 MBC 파업 장기화를 의도적으로 방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 현장으로 돌아가 공정방송 투쟁을 벌여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파업의 성과가 없고 △아무 소득 없이 파업을 접으면 노조에게나 사측에게나 좋지 못한 선례를 남길 수 있다며 파업 중단 결정에 반발했다.

특히 의사결정과정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비대위의 결정을 총회에서 사실상 ‘통보’하는 방식에 대해 상당수의 조합원들은 거부감을 나타냈다. 이들은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총회의 뜻에 따라 집행부의 결정도 바뀔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노조는 조합원들의 비토에도 파업 중단 방침을 철회하지 않았다. 노조 관계자는 “전술적 판단에 대해 위임받았다고 생각했는데 거기까진 위임하지 않았다고 하니, 현실적 간극이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투쟁’

이 과정에서 세대별 인식차도 두드러졌다. 나흘간 이어진 총회를 지켜보며 입사 15년차 한 PD는 “젊은 세대와 윗세대가 생각하는 조직 운영 원리가 다른 것 같다”고 전했다.

입사 16년차 한 PD도 “우리 세대만 해도 조합이 지시하고 결정하면 당연히 따라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2000년대 입사한 후배들은 의사결정과정이 민주적이어야 하고, 납득하지 못하면 따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 후배들이 훨씬 강경하다”면서 “우리를 포함한 ‘선배’들은 후배들을 보면서 투쟁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그런 편견들이 완전히 깨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른바 ‘새로운 세대’의 등장은 MBC 내부에서 꽤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한 경영부문 조합원은 “젊은 조합원들의 투쟁 열기와 정서를 조합 집행부에서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결국 젊은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계속 되자 집행부는 이를 사실상의 불신임으로 받아들이고 지난 12일 총사퇴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노조 관계자는 “투쟁의 선봉이 되고 주력꾼들이 될 젊은 조합원들을 찍어 누를 수만은 없지 않나”라며 “그들의 열기를 투쟁 동력으로 삼을 새 그릇을 만들어주는 게 옳다고 본다”고 밝혔다.

   
▲ 지난 39일간의 파업과 나흘간의 토론은 이근행 위원장 이하 노조 집행부에게도 많은 고민과 과제를 남겼다. ⓒ언론노조 이기범 기자
그러나 파업 중단에 대한 지지 여부와 관계없이 ‘노조가 분열되어선 안 된다’는 명제에는 대부분이 동의를 나타냈다. 파업 중단 결정을 성토한 많은 이들도 “판단은 잘못됐지만, 집행부는 신뢰한다”고 밝혔고, 집행부 또한 “우리의 희생으로 노조가 깨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입사 15년차 한 PD는 “지난 나흘간의 격론 속에서도 변하지 않은 것은 집행부에 대한 신뢰와 MBC를 지켜야 한다는 원칙이었다”고 전했다. 결국 현 노조 집행부는 조합원들로부터 ‘재신임’을 받고 총사퇴 방침을 철회했다.

상처와 희망 남긴 나흘간의 토론

하지만 이로써 노조가 완전히 정상화 되었다고 보긴 어렵다. 입사 14년차 PD는 “총회는 주로 논리의 싸움이긴 했지만, 집행부에 대해 일부 감정적이거나 강경한 발언들도 나와 서로 상처로 남았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집행부가 다시 ‘신뢰’를 받았으나, 일부 반발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향후 투쟁을 이어가는데 있어서 기존의 동력을 다시 끌어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노조 관계자는 “앞에서 투쟁을 이끌고 구호를 외칠 때 그 진정성을 얼마나 믿어줄 것인가 하는 고민이 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MBC 안팎에서 많은 이들이 이번 과정을 희망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다른 방송사 관계자는 “MBC의 대단한 저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근행 본부장은 “투쟁 전환과 관련한 격정 토론은 우리 안의 일체감을 강화하고 지속적인 투쟁 에너지를 확인하고 충전하는 과정이었다”고 평가하며 “상처가 아닌 성장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입사 16년차 한 PD도 “그동안 관성적으로 싸움을 해나가는 측면이 있었다면, 이번 토론을 통해 우리가 왜 싸우고, 어떻게 싸워야 하는 지에 대해 분명히 자각을 하게 된 것 같다”면서 “어떤 식으로든 노조 역사의 신기원을 이룰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조 관계자 또한 “파업을 일시 중단하자는 쪽도, 계속 하자는 쪽도 MBC를 지켜야 한다는 당위성과 개인의 양심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신뢰는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서 “집행부나 조합원 모두 혼란스럽고 힘든 부분이 있겠지만 최대한 신속하게 그 틈을 메워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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