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6.29 10:14

SBS 월드컵 독점중계가 예능에 미친 영향

[김고은의 예능의 정석]‘남자의 자격’과 ‘야행성’ 월드컵 특집

우루과이전 석패를 끝으로 뜨거웠던 대한민국의 월드컵 열기도 차츰 식어가고 있다. 16강전이 시작되면서 2010 남아공 월드컵의 열기는 점차 달아오르고 있지만, 원정 첫 16강 진출이라는 쾌거와 함께 ‘우리들의 월드컵’은 사실상 막을 내린 셈이다.

SBS가 단독 중계한 이번 월드컵은 경기장 밖에서 여러 웃지 못할 상황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월드컵 시작 전부터 지상파 방송 3사가 뉴스에 이어 법적 대응으로 공방을 벌이더니, 월드컵이 시작되자 예능프로그램으로 신경전이 옮아갔다. 특히 황선홍, 유상철 등 월드컵 스타들을 내세워 ‘월드컵 특집’ 대열에 참여한 MBC와 달리 KBS 예능은 월드컵 중계권에 맺힌 한을 풀겠다는 듯 도전적인 태도를 보여 눈길을 끌었다.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남자의 자격’

이번 월드컵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예능 프로그램 중 하나는 KBS 〈해피선데이〉 ‘남자의 자격’이다. ‘남자의 자격’은 월드컵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이경규를 앞세워 지난 13일부터 3주간 남아공 현지와 서울에서 열띤 응원전을 펼쳤다.

 
 
▲ 지난 13일~27일 3주간 방송을 '남아공 월드컵' 특집으로 꾸민 KBS '남자의 자격'. ⓒKBS
하지만 월드컵 중계권이 없는 KBS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이경규는 현지 경기장 내에서 열심히 응원했지만, 부부젤라 소리와 중계권 때문에 말소리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았고, 때문에 과거 ‘이경규가 간다’에서 보여줬던 재치 있는 입담은 기대할 수 없었다.

경기 화면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었던 KBS는 ‘될 대로 되라’는 듯 보도용으로 제한된 경기 화면까지 삽입했으나 역시 현장감은 부족했고, 이에 대해 SBS가 강경 대응 방침을 선언하면서 갈등 국면이 조성되기도 했다.

‘남자의 자격’편에서 돋보였던 것은 오히려 김남일 선수의 아내 김보민 아나운서가 가슴을 졸이며 경기를 관전하는 모습과 같은 장면이었다. 남편의 교체 출전에 반색하던 김보민 아나운서가 실점을 부른 위기 상황에서 ‘어떡하지’만 되뇌던 모습은 SBS의 월드컵 중계가 주지 못한 긴장감과 떨림을 선사했다.

‘야행성’ SBS 독점중계 현실 패러디

‘남자의 자격’에 이어 KBS 〈밤샘 버라이어티 야행성〉(이하 야행성)도 질세라 월드컵 열풍에 뛰어들었다. 〈야행성〉은 지난 20일과 27일 ‘남아공 월드컵 특집’을 방송했다. 대한민국 거주 나이지리아인들로 구성된 ‘나이지리아’ 대표팀과 〈야행성〉의 MC와 ‘슈퍼주니어’ 멤버들로 구성된 ‘대한민국’ 대표팀이 펼친 빗속의 축구시합에 이어 ‘진짜’ 나이지리아전 시청기가 27일 전파를 탔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이 바로 ‘적자생존 월드컵 시청 대결’이었다. 〈야행성〉은 신동엽, 윤종신, 장항준, 길, 온유 등 다섯 명의 MC들 가운데 동전 많이 줍기와 돈방석 앉기 대결을 통해 살아남은 사람만이 거실에서 TV로 월드컵 나이지리아전 경기를 시청할 수 있도록 했다. 대결에서 진 MC는 방에 갇혀 ‘채널 6번이 나오지 않는’ TV를 시청해야 했다.

여기서 주의 깊게 살펴볼만한 대목은 바로 제작진이 심어놓은 ‘메시지’였다. 제작진은 TV 리모컨에서 수도권 지역 SBS의 아날로그 채널 번호인 ‘6번’ 버튼을 빼놓는가 하면, MC들이 월드컵을 시청하는 TV 화면을 뿌옇게 모자이크 처리하거나 자막 등을 통해 ‘월드컵도 마음대로 못 보는 더러운 세상’을 비꼬았다.

 
 
▲ SBS 독점중계를 패러디한 KBS '야행성' ⓒKBS
돈을 많이 줍거나 돈방석에 제일 먼저 앉아야 월드컵을 시청할 수 있다는 게임 규정은 ‘월드컵도 돈이 있어야 본다’는 의미의 풍자로, 방 안에 갇힌 출연자들은 ‘시청권 박탈’의 피해자로 해석됐다. 〈야행성〉은 특히 나이지리아전 후반 20여분을 남겨두고 패자부활전을 통해 모든 MC들이 월드컵을 시청할 수 있도록 하면서 ‘누구 혼자 독점하지 않고 다 함께 보니까 더욱 좋았던 시간’이란 자막을 내보냈다. 제작진의 ‘의도’가 분명히 드러난 것이다.

이날 방송에 대한 시청자들의 평가는 엇갈리는 편이다. 시청자들은 ‘취지는 이해한다’면서도 “방송을 통해 간접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는 건 잘못”이라거나 “모두의 축제인 월드컵을 볼 수 없도록 한 것은 너무했다”는 반응이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이 같은 상황은 SBS의 월드컵 단독 중계를 둘러싼 방송사간의 신경전이 부른 촌극임에 틀림없다. ‘남자의 자격’은 27일 방송에서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도 함께 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브라질 월드컵 역시 SBS가 중계권을 독점하고 있다. 그렇다면 4년 뒤에도 이처럼 방송사들이 뉴스와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신경전을 벌이는 상황을 두고 봐야 할까. 부디 이번 같은 촌극이 되풀이되지 않기만을 바랄뿐이다. 

김고은 기자 nowa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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